신신의 서울 작업실에서...
2024.04.17 15:30
참여자: 신동혁, 신해옥, 차차

계획과 즉흥

차차: 저는 엄청 계획적인 스타일이에요. 어떤 작업을 할 때 주로 단어나 문장에서 시작하고, a-z까지 다 계획을 하는 편이죠. 그런데 올해가 되어서 스스로 변화했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어요. 유나킴씨의 실험그래픽 수업을 듣고 있는데, 랜덤한 키워드를 뽑아서 그것을 주제 삼아 작업하는 수업이에요. 고민해 본 적 없는 단어를 받기도 하고, 단어를 다시 리서치하는 과정을 지나다 보니 새로운 방향이 나오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이 도출됐을 때 재밌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중 번역이라는 단어도 오류가 많은 예술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고요.

해옥: 저는 계획을 못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떤 랜덤함에 자기를 던져보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어쨌든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긴 하잖아요. 랜덤함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은 좋은데, 그 상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 틀을 만들어야 결과물로 이어지는 단계가 생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정리를 하고 갈무리를 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동혁: 계획이 없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것 같아도 그걸 운영하는 보이지 않는 차원의 계획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특히 디자인하는 상황에서요. 그 계획을 너무 읽히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노력들도 많이 해요. 나는 이런 걸 의도하기 위해서 이런 비주얼을 만들었지만, 너무 뻔한 클리셰 같은 것들을 피해 가기 위해서 약간의 변주를 주거나.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부분들이죠. 계획하는 걸 좋아하면 그걸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해옥: 차차는 그런 말씀인 거 같아. 원래는 머릿속에 기획적으로 딱 정리가 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편이었는데, 우연적인 것들 안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해보지 못한 것들을 만들고 있으니까 되게 재밌는 시기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차차와 반대로 즉흥적인 사람이거든요. 제가 대학원에 가서 논문을 쓰며 스스로 도움이 됐던 것은, 산발적인 어떤 생각들이 결국에는 내 언어로 정리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지 머리를 쓰면서 억지로 해내다 보니 뭔가 발견하게 됐던 게 있거든요. 그래서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할 때 아주 우연에 기대기보다는 그래도 자기 언어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물론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로 나오는 데 있어서 그게 선형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막 얽혀 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사례들을 한 폴더 안에 넣어놓고, 이런 우연적인 것들 사이에서도 나는 무엇을 발견했다든가, 혹은 다음 방향성을 찾았다든가 하는 것들이 없으면 여러 개의 스케치에 불과하지 않은 것 같아서 자기 언어화하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아요.

큰 강줄기를 찾아서

차차: 즉흥적인 환경에서 작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상위 질문이 단단한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동안 했던 작업을 돌아봤을 때는 이미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제가 그려놓은 어떤 결과 그대로 도출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 것에 지루함을 느끼던 와중에 실험그래픽 수업을 경험하게 된 것 같고요. 그래서 출발을 랜덤함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동혁: (해옥에게) 옛날에 내가 너한테 그냥 구상만 하고 싶다고 얘기했던 거랑 맥이 닿았을 수도 있겠다. 저는 구상만 하고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머릿속엔 이미 그림을 다 그려놨는데 그걸 수행해야 하잖아요. 지난한 과정들을.

해옥: 그러면서 되게 좌절할 때도 있죠.

동혁: 좌절한다기보다는 너무 지겨운 거지. 내가 생각한 번뜩이는 아이디어까지는 좋은데,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랑 커뮤니케이션 해가면서, 아이디어가 깎여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웃풋까지 가는 그 지난한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는 게 하기도 전에 지겨운 거야. 뻔히 오염될 게 뻔하니까. 그런데 좀 재밌다고 생각될 때는 그런 아이디어가 협업자들이랑 만나서 내가 의도했던 방향이랑 미묘하게 어긋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냈을 때 좀 재밌거든요. a가 될 줄 알았는데 a-2가 됐을 때. 큰 방향은 같지만, 약간 뒤틀려서 저도 예상치 못한 발견들을 하게 될 때가 재밌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여유로워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제 의도와 조금 다르고 달라지더라도, 그러려니 하게 된 것도 있어요. 20대 때는 클라이언트를 가르치고 싸우고 그랬던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제 계획대로 안 되고 짜증 나는데, 돈도 많이 안 주고, 그런데 자꾸 뭔가 요청하고. 이 사람은 왜 나한테 부탁한 거지 싶고요. 지금은 뭐가 나오는지 한번 보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큰 그림에서 제가 원하는 방향만 관철되면요.

해옥: 저도 되게 공감하는 거 같아요. 큰 줄기를 갖고 가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꾸 대학원 시절이 떠오르는데, 그때 내 작업을 어떻게 선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잖아요. 제가 관심 있는 것들 혹은 지금 머릿속에 가득 찬 것들을 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이랑 펼쳐 놓게 된 것 같아요. 아마 PaTI도 그런 점이 장점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학교도 디자인 공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정말 랜덤한 만남들이 많았거든요. 뉴욕에서 아티스트가 갑자기 방문한다던가, 그럼 그 사람이랑 그냥 만나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클라이언트들과는 대부분 제 디자인 작업에 대한 얘기만 했었고, 제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이랑 얘기하게 될 경우가 별로 없었어요. “나 작업을 하다가 이거에 빠져서 이걸 보고 있어”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봐, 혹은 이 작가 작업을 좀 찾아봐, 이 영화를 봐봐 하면서 저를 계속 샛길로 빠뜨리는 거예요. 오히려 우연적인 것들을 만나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추천해 준 책을 읽다 보니까 밑에 참고 문헌이 있어서 또 다른 걸 찾아보게 되고,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러가게 되고요.
    강줄기에 휩쓸려 가는 상황인 거죠. 이렇게도 갔다가, 다른 줄기로도 갔다가. 그러면서 조금씩 뭔가 틀어지기도 했는데, 아예 산발적으로 뻗어나가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에 있어서 불안감이 느끼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이리도 갔다가 저리도 갔다가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설정해 놓은 방향을 따라가는 경험을 좀 했던 것 같아요.

동혁: 그건 좀 양가적인 거 아닐까? 좀 더 젊고 시간이 많을 때,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는데 무언가를 선택하면 나머지를 못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불안감이 계속 같이 따라다니는 거지. 다 해야 할 것 같고, 난 뭐든 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면 캐릭터가 굳어져 가고, 내가 놓치는 건 없을까, 이런 경험 말고 다른 경험을 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나 후회도 생기는 거지.

해옥: 그런데 그건 제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대학원 다니던 상황 자체가 실제로 일을 많이 해본 상태로 공부하려고 갔고, 여기에서 방황할 순 없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일을 하면서 방황할 수는 없잖아요. 일은 항상 잘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인데.

동혁: 그런 것도 있고, 그동안 너가 너무 성실한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의 만족이 최우선 가치였는데, 대학원에서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정답을 내리고 내 만족을 최우선으로 둬야 했잖아. 그런 경험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확실하지 않은 느낌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어.
    해옥 씨가 진짜 모범생이거든요. 이렇게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을 별로 못 봤어요. 그런데 대학원에서는 정답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거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죠. 저라도 있었으면 옆에서 티키타가 하면서 대화라도 했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었고, 계속 외롭게 싸우고 있더라고요. 2년을 힘들게 버티고 나니까 논문 한 편이 나오고, 논문을 정리해서 단행본도 만들고, 이벤트도 기획해 보면서 숙성된 것 같아요.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해옥 씨가 먼 길을 돌아가도 결국에 다시 돌아올 만한 홈그라운드가 생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뭔가를 바라볼 때, 인지할 때 어떤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한 세팅이 이미 만들어진 것 같아서 그 이후로는 되게 자유로워요. 다른 생각들이 섞여도, 내 본질이 이거라는 거에 대한 자의식이 있어요. 보통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게 최우선 가치이기 때문에 내가 매번 바뀌거든요. 이번에는 모던한 거 잘하는 사람, 어떨 때는 장식적인 거 잘하는 사람, 또 어떨 때는 일러스트레이션 잘하는 사람. 그런 식으로 카멜레온처럼 계속 바뀌다가도 자기 메시지나 관점을 정립하고 나서부터는, 변신해 보고 나서도 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런 안정감에서 자유로움이 생기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옆에서 목격자로서 봤을 때요.

새로움

차차: 새로움 자체에 저를 놓으려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제 작업을 보여줄 때마다 ‘차차 답게 했다, 여러 사람 작업 속에 섞여 있어도 네 것을 고를 수 있겠다’는 식의 말을 너무 많이 듣는 거예요. 1~2년 전까지만 해도 칭찬처럼 들렸는데, 이제는 내 작업이 다 똑같나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새로움을 좇게 되는 것 같아요.

해옥: 새로움을 좇게 되고, 랜덤함을 받아들여 보는 게 내가 생각해서 넣은 것과는 다른 것을 넣어보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여러 가지를 놓고 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되게 많이 만들어보고 그걸 쭉 놓고 보면서 스스로 객관화를 하면서, 나는 이런 랜덤함 속에서도 이런 것들을 찾고 있구나, 쫓고 있구나 같은 것들을 발견해 보는 거죠.
    그걸 분류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일 것 같아요. 어느 날, 책을 읽다 보니 갑자기 어떤 작업이 너무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빠르게 움직여서 뭔가 만들어요. 저는 학교에서 만들었던 여러 작업물을 제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팔레트를 늘렸다고 생각해요. 이런저런 팔레트를 만든 다음에, 제 생각을 정리해야 될 때 키워드를 만들어서 폴더 안에 분류하는 걸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비슷한 것들끼리 묶이고, 이런 키워드들이 내 안에 있구나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만들 때는 각각의 생각으로 즉흥적으로 만든 것들이었는데, 이걸 놓고 보니 이런 단어들이 도출되는구나, 그리고 그걸 폴더로 분류해 보니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것들이 느슨하게 다 꿰어지더라고요.
    정해놓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쭉 만들어보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언어가 내 안에 내재되어 있구나 같은 것들을 발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했던 것 같거든요. 뭔가 불안하니까 큰 강줄기를 유지하면서도 계속 밖으로 나가보고, 그렇게 해서 만든 것들을 또 나름대로 이 강줄기에 맞게끔 분류해 보고, 아닌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버리고요.

동혁: 얘기를 들을수록, 차차가 고민하고 계시는 거 여전히 저희도 하는 것 같은데요? 그걸 안 하는 순간 그냥 고인물 되는 거고, 고인물 되는 순간 저 사람의 작업은 너무 예측되어 버리니까요. 그걸 기대한 일이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새로움은 떨어지겠죠. 저희는 어쨌든 아직도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고, 그런 것들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녹아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계속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이것저것 찾아보고, 시도도 해보고, 아쉬웠던 것들은 다음 단계에서 낫게 만들어보려고 하고. 그것들을 멀리서 보시고 좋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저희도 보이지 않는 단위에서는 되게 애쓰고 있거든요. 그런 낙으로 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노력이 왜 그런지 따지고 보면, 불안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저희도 이제 연식이 되다 보니 새롭고 젊은 디자이너들 앞에 두고 계속 경쟁하는 거잖아요.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시장에서 수요는 정해져 있고, 공급은 너무 많으니까요.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겉으로는 멋있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노력을 하는 거죠. 우리 무기는 뭐지, 우리 캐릭터는 뭐지? 우리는 삶이랑 작업이 자연스럽게 인풋과 아웃풋으로 연결된 감각으로 가는 게 우리한테도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대학원 때처럼 높은 온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중탕으로 계속 가는 태도인 것 같아요.

해옥: 그때는 스파크가 튀고, 끓는 물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지. 그런데 그게 저는 되게 좋았어요. 왜냐하면 일하면서 그러면 안 되잖아요. 클라이언트들에게 되게 성실한 사람으로서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서 주고, 의견을 듣고 또 발전시켜야 하니까. 그런데 그 2년 동안에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저를 몰아넣었던 거 같아요.

자의식

동혁: 저는 어느 시점에서 작업할 때 초연해졌어요. 20대 중후반 쯤이었는데, 회사 때려치우고 나와서 프리랜서 2~3년 차 하는 중이었어요. 일단 나한테 내가 뭐라고 일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감각이 저한테 안정감을 주는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어떤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보고 환호해 주지 않더라도 제가 만족하는 게 중요했는데 그 만족의 기준이 명확했어요. 그래픽 디자인사의 누락된 챕터들을 내가 채우면 성공이라는 게 한 축이었어요.
    예를 들어서 대부분의 그래픽 디자인상은 백인, 남성, 유럽권 여기에서 생산됐잖아요. 그러면 누락된 게 너무 많죠. 동양, 아시아, 특히 한국, 저는 남성, 해옥 씨는 여성. 이런 사람들이 만든 것들은 역사에 써지지 않았으니까, 저희가 깃발 꽂으면 꼽는 것 자체가 역사가 된다는 감각이 저한테 중요했죠. 남들이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제가 알아보고, 제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성취가 있으면 돈 많이 받고 적게 받고를 떠나서 저한테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해옥: 동혁 씨가 자주 하는 말 중에 그런 거 있어요. 저희가 작업을 할 때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더라도 동혁 씨가 “야, 지금까지 우리가 작업한 거 중에 이런 걸 본 적이 있어?” 그러면서 “없으면 우리가 뭔가를 성취한 거야. 그거에 나는 되게 만족해”라고 되게 자주 말해요. 저는 그런 말을 하는 신동혁이 처음에 되게 신기했었는데, 그게 본인한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동혁: 그래픽 디자인 사회에 아직 써지지 않을 챕터거나 아니면 발견되지 않은 기법이거나, 아니면 발견됐는데 사람들이 놓치고 그냥 스킵했던 부분들이거나. 그걸 저희가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데 저는 되게 큰 자부심을 느끼고 그게 돈으로 연결될 때는 별로 없고요.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봐 주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그런 거에 정통한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게 그거 자체가 저희한테 되게 큰 목표인 것 같아요. 죽을 때 몇 조각이라도 역사책에 기록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해옥: 엄청난 포부죠? 그래서 저는 “와 너는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동혁: 그래서 별로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사람들이 좋아해 줄 때도 있겠죠. 그건 저한테 제일 큰 동기부여는 아니고, 나도 좋은데 사람들도 좋아해 주네? 고맙다. 이 정도죠. 그냥 늘 침착하게 큰 그림 안에서 내가 유의미한 걸 하냐 마냐 이 싸움이 저한테 중요해요. 지적 허영이 강하다. 그렇게 하다가 온도를 조금 달리해서 돈 버는 작업도 하고, 그 안에 클라이언트들이 못 알아보지만 저희가 만족스러운 요소도 살짝 녹여내고. 그걸 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저희를 거쳐 나가는 거면 저희의 생각이 투영되는 것 중요하니 이런 자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거죠.
    되게 웃긴데, 그런 포부와 동시에 작은 욕망들이 있어요. 작은 욕망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재지 않고 먼저 접근도 해보고 먼저 제안도 해봤던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중고등학교 때 남들 대중가요 들을 때, 저는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안 듣는 음악 찾아서 들었어요. 그런 부류들이 있잖아요.

차차: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다들 엑소를 좋아할 때 아직 유명하지 않은 모델을 좋아한다거나.

동혁: ‘난 달라’하는 자의식으로 있다 보니, 그 시대에는 밴드 음악이 비주류한테 소구가 있었고 괜히 밴드랑 일해보고 싶었어요. 앨범 디자인도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회사 때려치우고 나와서 처음 했던 게 홍대 공연장 전전하면서 기획자들이나 뮤지션들이랑 일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좋아서 접근했을 뿐인데,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 중에 공연 기획자 혹은 큐레이터 이런 분들이 제가 만든 포스터를 보시고 다음에 같이 한번 해요- 식이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수업 1

해옥: 저는 파티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파티에서 공부하신 분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가르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엄청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그래픽 디자인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넓은 작업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아까 민경님이 편집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고 딱 말씀을 하셔서 그냥 그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자기의 관심사가 정의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환경에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데 확고하게 말씀하신 게 생경하게 느껴져서요.

차차: 저는 중학생 때부터 매년 새해 목표 같은 것들이 ‘하고 싶은 거 정하기’ 직업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아요. 파티에 와서도 1학년 때는 파운데이션 과정이니까 이 수많은 디자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뭔지 찾고 싶다는 목표가 컸고요. 그러다 2학년 가을학기 때 체조 스튜디오와 곽해나 스승의 편집디자인 수업을 듣고 내가 이렇게까지 종이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지를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직업보다는 어떤 삶의 형태를 살고 싶은지, 그리고 그 삶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 같고요. 종이 위에 텍스트나 이미지를 얹히는 작업을 할 때 즐거운 건 맞지만, 그것보다도 저는 이 세상에 없는 걸 내놓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거든요. 이미 있는 것 중에 무엇에 주목할지를 더 고민하고,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을지 편집 자체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어요.
    파티에 오기 전에는 패션 분야에 있었거든요. 그것도 주변에서 옷을 좋아하니 만들어보는 게 어때? 해서 그럴까? 하고 봉제부터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동혁: 계획적이라고 하셨는데… 그걸 구현해 가는 과정은 계획적일 수 있지만, 처음 스타트할 때 엄청 우발적인데요?(웃음) 그러니까 그걸 현실화하기 위해서 계획을 당연히 세워야 하니까 계획에 포커스가 맞춰져 계실 수 있는데, 이런 우발적인 테크트리로 사는 또래가 별로 없지 않을까? 초반에 던진 화두가 대화가 진행될수록 어긋나는 것들이 있어서 되게 재밌네요. 보통 레귤러한 사람들은 진짜 계획적이에요. 예를 들어서 막 이래요. 10대 때 어느 정도 공부를 해서, 인서울의 대학교에 가고, 이 안에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지 못하면 전공을 살릴 수 없으니까 경우의 수를 두고… 그리고 그게 안 됐을 때 되게 스트레스 받아 하거든요. 중산층으로 편입하지 못해서요. 그런데 얘기하시는 거 보면 질문이 되게 많으시고, 엄청 우발적이고, 내가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시는 건 맞지만요.(웃음)

차차: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가 속해 있는 환경 기준인 거 같아요. 대안학교를 나왔고, 주변에서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저도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옥: 파티에 대안학교 출신 분들도 많죠?

차차: 거의 반반인 것 같아요.

동혁: 인문계가 파티 가면 별종일 확률이 높아. 제가 건국대학교 수업을 꽤 오래 나갔거든요. 6~7년 나갔나? 그 친구들은 정말 한국 사회가 원하는 레귤러한 사람들이라 딱 모아놨을 때 진짜 재미없어요. 회색 인간들처럼. 그래서 제가 학교를 그만뒀거든요. 차라리 파티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랑 우당탕탕하면서 뭘 만들어갔으면 훨씬 재밌다고 느꼈을 수 있는데, 뭔가 인터넷 강사처럼 떠들고 반응은 없고 과제는 또 열심히 해오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될 걸까, 합이 참 안 맞아서 그만뒀죠.

차차: 한 번에 수업을 듣는 학생도 많죠?

동혁: 많죠. 오전 25명, 오후 25명. 하루에 만나는 친구들만 50명 정도예요.

해옥: 계원대학교 수업은 오전반 45명, 오후반 45명이에요. 90명. 그래서 제가 피드백을 주면 저 혼자 게임을 하는 것 같아요. 얘한테는 5분 쓸 수 있고, 쟤한테도 5분 쓸 수 있고, 몇 분 넘었네. 다음에는 어떡하지? 엄청 빡센 거 같아요.

동혁: 파티는 보통 대학원의 무드가 형성된 거지.

수업 2

동혁: 제가 출강하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나온 게 다른 형식의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을 시도해 보고 싶어서도 있거든요. 학교 안에서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해옥 씨랑 학교 다닐 때 이상한 동아리를 조직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던 경험이 되게 좋게 남아 있고, 그 경험은 다른 사람들은 좀 대신하기 힘든 경험이니까 그걸 잘 살려서 우리 다음 세대를 만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계속해 보고 있었어요. 학교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고 나와서, 몇 년 안으로 실행에 옮기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된 거죠. 이 아카데미 안에서는 점점 한계가 오고 있다.
    제가 수업에서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이걸 받아들여줄 학생들이 형성되지 않으면 그냥 저 혼자 그냥 광대놀이 하다 끝나는 거거든요. 민경 씨는 지금 연락해서 오셔서 막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런 분들은 계실 거란 말이죠. 이런 분들이 입시 제도에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해서, 인서울 대학에 올 확률보다 직접 연락해서 만날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 그런 물리적인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은 거예요. 서로 연락해서 책도 같이 읽고, 짧게나마 클래스나 워크숍도 하고, 토론도 하고, 리뷰도 하고, 글도 써보고. 야학당 같은 걸 하면 좋겠다.
    학교가 점점 학교 역할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선생님들도 문제인데 학생들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공간에 가서 친구들이랑 나를 대보면서 자기 객관화도 하고, 선생님들한테 이런 걸 던졌을 때 어떤 반응이 오는지도 보면서 꼭 그 직업을 선택할 필요는 없지만, 나를 파악하고 사회에 나가면 좋을 텐데 그런 걸 안 해요. 상호작용이 없어요. 되게 답답하더라고요. 서로 안 친하고, 대화하지 않고, 이 친구가 발표하고 있는데 다들 딴 일 해요.

차차: 인원이 많으면 아무래도 숨기가 좋죠.

해옥: 그게 진짜 안타까운 거 같아요. 검사받는 게 수업이 아니잖아요. 이거 했으니까 피드백 주세요가 끝이 아닌데, 다른 친구는 무슨 얘기를 듣는지, 나라면 저렇게 했을 텐데 이러면서 생각하는 게 공부잖아요.

동혁: 그걸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게 너무 보기 괴로웠어요.

해옥: 저도 수업 시간에 그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 지금 제가 하는 말은 저 친구한테 하는 말이 아니고, 모두한테 하는 말이고, 계속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그런 것을 이렇게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가 되니까 머리를 굴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대화하고 주고받는 것에서 되게 많이 배우는 거잖아요. 근데 그걸 그냥 간과하는 것 같아요.

동혁: 그러니까 개인이 시간을 써서 작업할 수 있는 것과 피드백 들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수업을 듣는 사람이 25명이라고 하면, 나는 이 작업을 해서 선생님한테 이런 피드백을 듣지만, 나머지 24개 경우의 수는 내가 가보지 않았지만 대리 체험해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안 듣는 거죠. 저는 앞에서 다 보이는데, “얘들아 뭐 하고 있는 거니 다 듣지 않더라도 10개 정도는 좀 들어야 하지 않겠니.” 발표하고 끝나면 내 차례 끝났다 이거죠.
    왜 이렇게 집중하지 못할까. 굳이 물리적으로 와서 이렇게 한 시간, 한 공간에 모였는데 이걸 왜 활용을 못 할까. 이런 거에 대한 좀 아쉬움이 있어서 차라리 집중할 놈들만 한 공간에 모여서 짧고 굵게라도, 빡세게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고, 나눌 거 있으면 나누고, 서로 경쟁하고, 헤어지면 소속감 없더라도… 그게 더 오히려 소속감을 더 강하게 심어줄 수도 있겠다 싶은 거죠.

해옥: 수업을 하면서 도움이 됐던 건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듣는 거였거든요. 사실 피드백이라는 게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은데라는 어떤 것들을 계속 던져주는 거잖아요. 그냥 잘했다고 하면 그건 피드백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리액션이지. 그래서 피드백이라고 하는 건 이제 이 친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얘기해 주는 거죠. 그러려면 저는 엄청나게 머리를 계속 굴리고 있어야 하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들은 잘 정리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갑자기 이 친구가 뭔가를 던졌는데 거기에 해당하는 적절한 생각을 아주 빠르게 한 다음에 그걸 던지는 것 자체가 혼자 있으면 생각해 보지 못할 것들을 이 친구들 때문에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지점이 좀 도움이 됐거든요. 제가 공부하는 것처럼, 이 친구들은 그걸 계속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들 걸 들으면서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냥 안 하고 있으니까 그게 아쉬운 거죠.

차차: 학생들이 다른 학생의 피드백을 전혀 안 하나요?

해옥: 그렇게 못하기도 해요. 시간도 그렇고, 그리고 쑥스럽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대학원 때 진행한 크리틱이 모든 학과에 오픈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학기마다 걔네들 발표할 때마다 항상 가서 들었는데 듣는 것만으로 진짜 많은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학교에서 많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아까 말했듯이 그냥 발표하고 발표 끝, 난 이제 자유 시간! 하고 그런 식의 수업이 되니까 저는 기계가 된 것 같고, 학생들도 기계고. 상호작용이 전혀 없죠.

동혁: 시간을 요령 없이 쓰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좀 답답하죠. 나중에 시간이 갈수록 30대 되시고 40대 되시면 아시겠지만, 내가 나를 위해서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의 양이 계속 줄거든요. 일단 체력도 줄고 점점 어른이 될수록 이래저래 하라는 게 되게 많아져요. 어머니 아버지도 나이가 드시면 자식들한테 약간씩 더 의지를 많이 하실 거고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그러면 내가 챙겨야 할 대상이 되게 많아지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내가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딱 20대까지인 것 같거든요.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니까 이건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보편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책 만들기

해옥: 그런데 저는 아까 말씀하신 것에서 되게 공감됐던 게 있어요. 저는 우발적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사람인데, 책을 만들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책 작업이 수행적인 작업이라 그런 것도 있는데, 그것보다도 민경 씨가 말한 것처럼 형태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내가 어떻게 변형할 수 있을까, 어떻게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것에 훨씬 더 관심이 많거든요. 웹 작업도 좋아하지만, 웹이라고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요. 갑자기 노래도 튀어나오게 할 수 있고, 하이퍼링크로 이상한 데도 데려갈 수 있고. 너무 망망대해에 던져진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데 책이라는 것은 딱 정해진 어떤 형식이 있는데, 이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을 때 훨씬 더 희열이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학생들은 예쁜 서체를 어떻게 고르고, 레이아웃을 어떻게 예쁘게 만들고, 이 책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까(물론 거기까지 생각 안 하는 친구들고 많지만)만 생각하는 거 같아요. 책이라는 구조를 이용해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어떻게 새롭게 담을 것이고,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 사람이 만든 책과 내가 만든 책은 완전히 다를 수 있잖아요.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런 편집에 훨씬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거 같아요. 이야기꾼으로서 내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게 또 그 안에서 계획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각각의 페이지들을 연결하고 그 안에서 구조를 만드는 일들이.

차차: 맞아요. 저는 사람들한테서 영향을 많이 받고, 제가 그리는 삶의 형태에는 사람이 필수적이에요. 사람과의 대화에서 얻는 텍스트에서도 힘을 많이 얻고요. 사람과의 만남, 그 속의 우발적인 단어나 느낌을 잘 받아들이면서 이어지는 작업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해옥님에게 연락을 드렸듯이, 모르는 사이지만 관심 있는 사람한테 자꾸 연락해 보고 만나보고 싶은 이유가 제 강줄기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파티를 졸업한 친구들도 파티 사람 말고 다른 외부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해옥: 사실 디자이너로 일하는 게 되게 소모적인 일이거든요. 왜냐하면 내가 계속 쓰임을 당하는 거잖아요. 누군가가 나를 호출하고 그 사람이 던진 어떤 것에 맞춰서 저를 갈아 넣어 뭔가를 만들고, 잘했네, 다음. 이런 식으로 일하는 게 너무 당연한데, 저는 그래도 이 작업을 하면서도 좋은 것은 협업자들을 만나는 거거든요.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물론 오래된 관계의 사람들과도 일하지만, 그런 데서 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갑자기 어떤 작가님이 이--만한 이야기를 들고 저한테 오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그걸 따라가기도 버거워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저걸 책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경청해서 듣고 있다 보면, 저도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를 만들게 되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좁은 자기 세계에 깊이 파고들어요. 그 사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배우는 것도 있고, 혹은 에디터분들을 만나면 정말 칼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들과는 또 다른 무언가를 공유하기도 하고요. 작업하면서 가장 즐거운 부분은 진짜 그런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에 나를 맞춰보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보고요. 저는 이런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온전히 내 작품만 하는 사람은 못했겠다는 생각도 되게 많이 해요.

동혁: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들어. 그게 대상을 바라볼 때의 어떤 필터가 있기 때문에 너가 그렇게 배우고 흡수하고, 네 걸로 만들 수 있는 것 같아. 예를 들어, 디자이너라고 했을 때 직업적인 역사라든가, 직업적인 배경이나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환경에 이르렀는지를 알아야 이런 프레임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그런 게 없으면 나한테 남는다고 생각하지만 남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트렌트처럼 이런 게 재밌네, 하고 받아들이다가 쌓이지 않고 휘발되는 거죠.

해옥: 누굴 만나든 막 휩쓸휩쓸해.

동혁: 중심이 없는 거죠. 그래서 기가 좀 세거나 자의식이 굉장히 강한 사람을 만나면 ‘그런 거 너무 좋다. 너무 재밌는 영감을 얻었어요’라고 하고 다음을 보면 내 건 없는 거예요. 그 사람의 에너지만 보고 끝나는 거죠. 내 걸로 흡수하려면 내 자의식이나 내 정체성이 분명히 서 있어야 하죠. 저는 스스로 계속 디자이너라고 생각하고 길거리에서 뭘 보더라도 그 프레임으로 보려고 해요. 그래서 다른 작가들이나 누굴 만나도 덜 휩쓸리는 거 같아요. 만약 그런 자의식이 없으면, 사라지는 소모품 같은 디자인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차차: 요즘 멋있다고 느껴지는 게 있나요?

동혁: 자기 역할을 스스로 창출한 사람들이요. 예를 들어서 워크룸 초창기 멤버 중에 이경수 디자이너라고 있어요. 여전히 같은 작업을 하시거든요. 그분의 역할이 생겼어요. 그분한테 어울리는 일들이 계속 들어와요. 대단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처음에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좋아했다가, 좀 자의식이 쌓이고 경험도 쌓이면서 저렇게 한결같이 작업하는 거 지겹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몇 년 앞서서 작업을 하고 계신 선배 세대잖아요.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저렇게 꾸준하게 자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하라고 해도 못할 거 같은데, 그걸 하고 있고 여전히 잘 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잘하고 계실 것 같고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많이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그분은 계속 계실 거 같은 거예요. 약간 공예가 같죠.

해옥: 요즘 저희가 앞으로 어떻게 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고 관심이 많다보니, 그렇게 자기 일을 오래하고 있는 디자이너들 보면 기본적으로 존경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오래 일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여서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진짜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 멋있어 보이는 거 하고 싶었나... 큰 강줄기의 필요성을 느낀다. 타인의 언어에서 정의된 나. 사실은 그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었을텐데, 주변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거기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도 아닌데 책을 쓰고 싶다니 웃기다. 어렸을 적, 나에게 책은 엄마가 읽고 싶은 책을 내가 목차별로 녹음해주면, 한 권당 5,000-10,000원 정도의 용돈을 받는 도구로 사용됐다. 아빠의 구두를 닦는 일이나 청소기 돌리기 정도의 노동 대가로 받을 수 있는 몇 백원보다 훨씬 많이 쳐주는 벌이였다. 그러면서 재밌는 책을 만나기도 했다. 도서관 사서인 엄마는 아마 내가 읽기를 바라는 책을 골라 요청했을 것이다.

책 안에 넣을 텍스트와 이미지...그러니까 콘텐츠에 대한 욕심도 있는 거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질 글을 쓸 수 있을까?

유심히 보는 것이 얼마나 낯선 일인가? 나를 둘러싼 것들을 다시 보는 것. 오래 자리하는 것들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이미 당연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어렸을 적부터 글로 나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새롭게 인식된 순간은, 김소연 시인을 만나고 난 이후였다. 너무 많이 들켜버렸고, 내가 문장 사이에 숨겨둔 문장을 건져 올렸고, '앙상'하게 쓰는 연습을 했고,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나를 만나면서 완결짓는 데까지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오는 이상한 희열, 나를 하나 넘어서는 느낌이 계속 쓰게 했다. 그리고 '슬프다'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 대신에 이 슬픔만이 가지는 단어를 딱 만났을 때의 짜릿함도 있다.
    무엇보다 글쓰기가 없는 삶 안에서 내가 얼마나 너절해지는지 목격해버렸기 때문에 글을 쓰려고 한다. 다르게 말하면, 글을 쓴 날에는 '잘 살았다'고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 쓰는 것이다.